문득 포도를 먹다가 씨를 뱉은 게 언제였더라. 수박에서 씨를 골라내던 기억도 이제는 조금 낯설다. 마트 과일 코너를 보면 씨 없는 포도, 씨 없는 수박, 씨가 거의 없는 감귤류가 자연스럽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는 언제부터 씨 없는 과일을 당연하게 여기게 됐을까. 과일에게 씨앗은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장치인데, 인간은 왜 그 씨앗을 불편한 것으로 여기게 됐을까. 오늘은 씨 없는 과일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그 편의 뒤에 어떤 구조가 숨어 있는지 살펴보려 한다.

마트 포도 코너를 보면 씨 있는 포도를 찾기 어려울 때가 많다. 씨 없는 수박도 이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상품군이 됐고, 한라봉이나 천혜향 같은 감귤류 중에도 씨가 거의 없는 품종이 많다. 샤인머스캣은 씨가 없고 껍질째 먹을 수 있다는 편의성 덕분에 프리미엄 과일의 대표 이미지가 됐다.
씨가 없다는 것은 소비자 입장에서 분명한 장점이다. 먹기 편하고, 아이들에게 먹이기 쉽고, 씨를 뱉는 번거로움이 줄어든다. 농가 입장에서도 소비자가 선호하는 품종은 더 높은 가격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니 시장은 자연스럽게 씨 없는 과일을 더 많이 원하게 됐다.
그런데 여기서 묘한 질문이 생긴다. 과일에게 씨앗은 원래 핵심이다. 씨앗이 있어야 다음 세대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씨 없는 과일은 어떻게 계속 생산될 수 있을까.
씨 없는 과일을 만드는 방식은 하나로만 설명하기 어렵다. 과일마다 구조가 다르고, 품종마다 처리 방식도 다르다. 다만 독자가 이해하기 쉽게 나누면 크게 세 가지 흐름으로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삼배체 육종이다.
염색체 수가 맞지 않는 식물을 만들면 정상적인 씨앗을 맺기 어렵다. 씨 없는 수박이 대표적인 사례다. 일반 수박보다 염색체 구성이 다른 삼배체 수박은 생존 가능한 씨앗을 만들기 어렵고, 상업 재배에서는 일반 수박을 함께 심어 꽃가루를 공급해야 안정적으로 열매를 맺는다.
두 번째는 식물 생장 조절 처리다.
포도에서는 지베렐린 같은 식물 생장 조절 물질이 씨 없는 포도의 알 크기와 품질을 조절하는 데 널리 쓰인다. 씨 없는 포도는 품종 자체의 특성과 재배 처리 방식이 함께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 샤인머스캣 같은 포도도 이런 재배 관리와 소비자 선호가 맞물리며 시장에서 크게 자리 잡았다.
세 번째는 자연돌연변이 선발이다.
자연에서 우연히 씨가 없거나 적게 맺히는 개체가 나타나면, 인간이 그것을 골라 접목이나 꺾꽂이로 계속 증식시키는 방식이다. 마트에서 흔히 보는 네이블 오렌지네이블오렌지가 대표적이다. 1820년 브라질 수도원에서 씨가 없는 돌연변이 오렌지 나무 한 그루가 발견됐고, 이후 접목으로 전 세계에 퍼졌다. 지금 팔리는 네이블오렌지는 모두 그 나무 한 그루의 후손이다. 제주 온주밀감 역시 씨가 거의 없는 품종 특성 덕분에 소비자 선호를 얻었고, 선발과 재배 확산이 이어졌다.

씨 없는 과일이 가져다준 변화는 분명하다. 먹기 편해졌고, 과일을 꺼리는 이유가 줄었다. 씨를 발라내야 했던 수박화채도, 씨를 조심해야 했던 포도도 훨씬 간편해졌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과일을 먹는 과정에서 작은 불편이 사라진 셈이다.
농가와 유통업계에도 장점이 있었다. 씨 없는 프리미엄 품종은 소비자 선호가 높고, 상품성이 강하다. 샤인머스캣 한 송이가 비싼 가격에도 팔렸던 이유도 단순히 맛만이 아니라 씨가 없고 껍질째 먹을 수 있다는 편의성이 컸다.
유통업체 입장에서도 설명하기 쉬운 상품은 팔기 좋다. "씨가 없습니다", "껍질째 먹을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먹기 편합니다" 같은 문장은 소비자가 바로 이해할 수 있다. 씨 없는 과일은 농업 기술의 결과물이면서 동시에 아주 강한 판매 문구가 된 것이다.
하지만 씨를 없앤다는 것은 단순히 불편한 부분을 지운다는 뜻만은 아니다. 씨앗은 식물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통로다. 그 통로가 약해지면 과일은 점점 더 인간의 개입에 의존하게 된다.
삼배체 수박은 생존 가능한 씨앗을 만들기 어렵다. 씨 없는 포도는 품종 특성과 재배 관리가 결합되어 시장성이 만들어진다. 씨 없는 바나나는 씨앗으로 번식하지 않고, 새싹이나 조직배양을 통해 이어진다. 과일마다 방식은 다르지만 공통점은 있다. 자연이 스스로 다음 세대를 이어가는 부분을 인간이 대신 관리한다는 점이다.
더 넓게 보면 유전적 다양성 문제도 남는다. 특정 품종이 시장에서 크게 성공하면 재배가 그 품종에 집중된다. 이것은 생산과 유통에는 효율적이지만, 병해나 기후 변화 같은 외부 충격에는 약점이 될 수 있다. 바나나의 TR4 위기가 보여준 것처럼, 단일화된 품종 구조는 편리함의 반대편에 리스크를 남긴다.
씨 없는 과일의 확산은 농업 생산 구조도 바꿨다. 씨 있는 품종을 직접 보존하고 이어 가는 방식보다, 상품성이 높은 품종과 묘목, 재배 기술에 의존하는 구조가 커졌다. 농가가 매 시즌 종묘 회사, 묘목 공급망, 농업 기술 지침에 더 많이 기대게 되는 흐름도 생겼다.
물론 이것을 무조건 나쁘다고 볼 수는 없다. 농업은 원래 인간이 자연을 길들이고 선택해 온 역사다. 벼도, 밀도, 사과도, 감자도 모두 인간의 선택을 거쳐 지금의 모습이 됐다. 씨 없는 과일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다만 편리함이 커질수록 우리가 잊는 것도 생긴다. 과일은 원래 씨앗을 품은 생명이었고, 씨앗은 불편한 찌꺼기가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한 장치였다. 우리는 그 장치를 줄이는 대신 더 편하고 보기 좋은 상품을 얻었다.
이제 우리는 씨앗이 있는 과일을 먹는다는 것은 번거롭다. 뱉어야 하고, 조심해야 하고, 아이들에게 먹이기 불편하다. 그래서 씨 없는 과일이 환영받은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소비자들의 선택은 분명 합리적이거나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다만 씨앗은 단순한 불편함이 아니다.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통로였고, 환경에 적응하는 유전 정보의 저장고였다. 그것을 줄이는 대신 우리는 매 시즌 인간이 개입해 과일을 다시 만들어내는 시스템을 선택한 셈이다.
이 이야기가 과일만의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우리는 늘 더 편한 것을 고르고, 시장은 그 선택을 빠르게 따라간다. 그런데 편리함이 커질수록 그 뒤에서 누가, 어떤 방식으로 자연을 다시 설계하고 있는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다음에 씨 없는 포도나 수박을 먹을 때, 그 과일이 그냥 자연스럽게 생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한 번쯤 떠올려 봐도 좋겠다.
※ 본 콘텐츠는 농업 및 식물학 자료를 바탕으로 한 정보성 글입니다. 특정 기업이나 품종을 홍보하거나 비방하려는 목적이 없으며, 공개 자료를 바탕으로 일반 독자가 이해하기 쉬운 수준에서 정리했습니다.
Q1. 씨 없는 과일은 유전자 조작 식품인가요?
A1. 대부분의 씨 없는 과일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GMO와는 구분된다. 삼배체 육종, 식물 생장 조절 처리, 품종 선발 등 여러 방식이 있으며, 유전자 자체를 직접 편집하는 방식과는 다르다.
Q2. 씨 있는 과일이 씨 없는 과일보다 영양이 더 좋은가요?
A2. 씨앗 자체에는 식이섬유나 항산화 성분이 포함된 경우가 있지만, 과육의 영양 차이는 품종, 재배 환경, 숙성도 등 여러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 씨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영양이 낮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University of Georgia Cooperative Extension, Commercial Watermelon Production
New Mexico State University, Improving Size and Quality of Seedless Grapes
FAO, Banana and plantain production statistic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