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BI가 급습한 이유는 마약도 아니고 무기도 아닙니다. 급습한 창고에서 발견된 건 레고 세트였습니다. 범죄 조직들이 현금 대신 레고를 선택한 이유가 있습니다. 추적이 불가능하고 가치는 오르며 누구나 의심 없이 삽니다. 아이들 생일 선물로 사는 그 장난감이 범죄 세계의 화폐가 된 사연입니다.
2018년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
경찰이 40세 남성 라지 아파이프 아자르의 집 차고를 급습했습니다. 차고 천장까지 쌓인 건 레고 세트였습니다. 배트케이브, 스타워즈 U윙, 1962년 빈티지 폭스바겐 캠핑카, 닌자고 사원. 전부 미개봉 상태였습니다. 경찰이 산정한 가치는 5만 달러(약 6,800만 원) 이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레고는 전부 훔친 물건이었습니다.
아자르가 쓴 수법은 단순했습니다. 온라인에 광고를 올렸습니다. "레고 세트 삽니다. 시중가의 30%에 구매." 훔친 물건을 파는 사람들이 그 가격에도 팔았습니다. 그는 도난 레고를 사들여 이베이와 중고 거래 앱에서 되팔았습니다.
경찰은 함정 수사를 벌였습니다. 두 명의 경찰관이 직접 아자르에게 레고 세트를 팔았습니다. 레고와 함께 면도기 카트리지도 거래됐습니다. 1만 3,000달러 거래 직후 그는 체포됐습니다.
혐의는 1급 절도, 자금 세탁, 범죄 공모였습니다.
이 사건은 끝이 아니었습니다. 포틀랜드에서 비슷한 레고 밀수 사건이 2016년에도 있었습니다. 당시에도 5만 달러 상당의 도난 레고가 압수됐습니다. 2024년 오리건주 스프링필드에서는 경찰이 3개월 수사 끝에 4,000개 이상의 도난 레고 세트(약 20만 달러)를 압수했습니다. 용의자들은 훔친 레고를 마약 구입 자금으로 사용했습니다.
(출처: Portland Monthly, 2019 / ABC News, 2024)
같은 해인 2026년 5월, 버지니아주 페어팩스 카운티에서도 Target, Walmart, Home Depot에서 레고를 집중적으로 훔쳐 중고 상인에게 팔아넘긴 두 명이 체포됐습니다.
(출처: WJLA News, 2026)
레고 도난 사건은 지금 이 순간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핵심 질문이 나옵니다.
세상에 비싼 물건은 많습니다. 왜 하필 레고일까요?
범죄 조직이 화폐로 쓸 물건을 고를 때는 네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첫째, 추적이 불가능해야 합니다.
현금은 일련번호가 있습니다. 금은 감정 기록이 남습니다. 비트코인은 블록체인에 모든 거래가 기록됩니다. 그런데 레고는 다릅니다. 레고 세트에는 제품 번호는 있지만 개별 추적 번호가 없습니다. 훔친 레고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포틀랜드 경찰 피터 심슨 경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레고는 인기 있고 고가이며 사실상 추적이 불가능하다."
둘째, 가치가 안정적이거나 오릅니다.
현금은 인플레이션으로 가치가 떨어집니다. 마약은 가격이 급변합니다. 레고는 다릅니다. 인플레이션에 맞춰 가격이 오르고 단종 세트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오릅니다. 단종 레고의 연평균 수익률은 11%로 금보다 높습니다.
셋째, 누구나 의심 없이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이베이나 중고 거래 앱에서 레고를 파는 사람을 아무도 이상하게 보지 않습니다. 10% 저렴하면 오히려 좋아합니다. 마약 거래는 의심을 받지만 레고 거래는 의심받지 않습니다.
넷째, 항상 수요가 있습니다.
전 세계 레고 팬과 컬렉터들이 항상 새로운 세트를 찾고 있습니다. 이베이, 브릭링크, 중고 거래 앱에서 수요가 끊이지 않습니다.
이 네 가지 조건이 맞아떨어지는 상품이 레고였습니다. 미국 법 집행 기관에서는 이미 레고를 "플라스틱 금괴(Plastic Gold)"라고 부릅니다. (출처: King5 News, 2017 / Portland Monthly, 2019)

이 현상은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호주: 절도범들이 앵글 그라인더와 쇠지렛대로 4개 매장을 털어 3만 달러 상당의 레고를 가져갔습니다.
영국: 레고 배송 트럭을 통째로 털어 15만 달러 상당을 챙겼습니다. 레고가 매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사라진 것입니다.
미국: 조직적인 레고 절도 단체가 연간 100만 달러 상당의 레고를 훔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한 그룹은 25만 달러 규모의 레고 절도 사기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레고 박스를 훼손한 뒤 현금으로 새 레고를 사고 다른 매장에서 훼손된 레고를 영수증과 교환해 현금을 받는 수법이었습니다.
(출처: King5 News, 2017 / Portland Monthly, 2019)
FBI 공식 자료에 따르면 조직적 유통 범죄(ORC)로 인한 미국 소매업계 피해액은 연간 450억 달러(약 61조 원)에 달합니다. 이 중 레고는 범죄 조직이 가장 자주 표적으로 삼는 제품 중 하나입니다.
(출처: FBI 공식 자료 / National Retail Federation, 2025)
여기서 놀라운 사실이 하나 더 있습니다.
지금 온라인에서 누군가 할인된 가격에 레고를 팔고 있다면 그 레고가 정상 루트로 나온 물건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레고에는 개별 추적 번호가 없으니까요.
레고 본사가 이 상황을 모를 리 없었습니다.
레고 도난 사건이 매년 뉴스에 나옵니다. 그런데 레고 입장에서 이 현상은 아이러니하게도 단순히 나쁜 뉴스가 아닙니다. 범죄 조직이 레고를 범죄 자금으로 쓴다는 것은 레고의 브랜드 가치와 희소성이 그만큼 높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레고가 2019년 세계 최대 레고 중고 거래 플랫폼 브릭링크를 인수한 것도 이 맥락에서 볼 수 있습니다. 공식 발표에서는 "성인 팬들과의 연결 강화"를 이유로 들었지만 중고 시장을 직접 통제하면 도난 세트의 거래 감시도 가능해집니다.
실제로 브릭링크에는 도난 세트 신고 시스템이 있습니다. 하지만 레고에 개별 추적 번호가 없는 한 근본적인 해결은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레고는 왜 개별 추적 번호를 넣지 않을까요?
추적 번호를 넣으면 블록 하나하나에 미세한 코드를 새겨야 합니다. 연간 750억 개의 부품을 생산하는 레고 입장에서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추적 번호가 없기 때문에 레고는 어디서든 자유롭게 거래되고 중고 시장이 활성화됩니다. 이게 레고 브랜드 가치의 원천이기도 합니다.
(출처: Portland Monthly, 2019 / LEGO 공식 보도자료, 2019)
레고는 우리 아이들의 장난감입니다.
그런데 FBI가 급습하고 자금 세탁에 쓰이고 마약 구입 자금이 됩니다. 미국 경찰이 "플라스틱 금괴"라고 부를 만큼 범죄 조직의 범죄 자금 은닉 수단이 됐습니다.
레고가 의도한 결과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레고의 품질 고집, 호환성 전략, 단종 정책, 희소성 관리가 만들어낸 브랜드 가치가 역설적으로 범죄 세계에서도 인정받은 겁니다.
생각해보면 이건 레고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가치 있는 것에는 항상 그 가치를 노리는 사람이 생깁니다. 금이 그랬고 달러가 그랬고 이제 레고도 그렇습니다.
아이 생일에 사줬던 레고 세트가 누군가에게는 현금이고 투자 자산이며 자금 세탁 도구라는 사실이 꽤 놀라웠습니다. 레고에 일련번호가 없어서 추적이 불가능하다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평범한 장난감 하나가 이렇게 복잡한 세계와 연결되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개인적으로 레고 광고는 전혀 아닙니다. 유익한 정보가 되셨길 바랍니다.
• Portland Monthly — How One $50,000 Bust Revealed an Underworld of Portland Lego Crime (2019)
• ABC News — Police build Lego heist case after $200,000 in sets seized (2024)
• King5 News — Legos are like gold for criminals (2017)
• WJLA News — LEGO LOOTERS: 2 face charges for stealing $10K worth of goods from Fairfax County stores (2026)
• FBI 공식 자료 — Organized Retail Theft
• National Retail Federation — Organized Retail Crime Report (2025)
• LEGO 공식 보도자료 — The LEGO Group acquires BrickLink (2019)